Life goes on

라멘 먹는 어린이

CrimsonPunch 2020. 3. 4. 16:45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서 전국의 학교들이 개학을 연기했다.

아이들의 개학을 기다리던 엄마들은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라멘은 언제나 옳다. 20200304 점심.

 

 

수요일 점심, 평일이건 주말이건 늘 점심시간이면 웨이팅이 길었던 라멘집을 찾았다.

역시나 사람이 없다. 바로 자리에 앉아 라멘을 주문했다.

 

라멘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도중 건너편 테이블의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던 아이다.

 

몇 달 전 주말에 라멘을 먹으러 이 집에 왔었는데,

일본 라멘집에서 보기 힘든 세대인 초딩들 셋이서, 저희들끼리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호소멘을 먹을지 치지레멘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자세히 보니 그 중에서도 메뉴 선택을 리드하고 있는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까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그 작은 손으로 큰 메뉴판을 잡고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 각 라멘의 맛과 식감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여러 번 일본 라멘을 먹어 본 연륜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으레 튀어나오기 쉬운, 

자신의 경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느낌(느이는 이거 못먹어봤지?)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친구들에게 뿌듯한 마음으로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아이들 역시 그 ‘어른스러운’ 친구의 설명에 집중하며 메뉴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그날 그 친구들은 라멘을 이미 경험한 어른스러운 친구 덕분에

새로운 맛, 새로운 경험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에게 그 경험을 

자랑스럽게 전파하리라.

 

 

 

오늘은 그 라멘 유경험자 어린이 혼자서 또 라멘을 먹으러 온 듯 했다.

아역배우처럼 예쁘게 생긴 그 아이는 바 자리에 앉아 능숙하게 라멘과 볶음밥 세트를 시켜 먹었다.

여러가지 추측을 해 봤다.

 

 

1. 라멘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 아이 엄마가
이 라멘집에 장부를 달아놓고 아이에게 방학 중 점심 끼니를 여기서 해결하게 하고 있다.

2. 엄마나 아빠가 이 라멘집 점장님이다.

3. 그냥 부유한 집 아이가 라멘을 좋아한다.

4. 사실 인생 2회차다.

 

 

뭐가 됐든 라멘이 맛있는 음식인 것은 확실하지만

나트륨과 지방 함량이 높은 돈코츠 육수를 어린 아이가 자주 먹는다면 조금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때에도 일로 바빴던 엄마가 점심을 매번 챙겨 줄수 없으니

방학 중에는 점심 끼니를 근처 바지락 칼국수 집에서 해결하도록 선결제를 해 두셨던 기억이 난다.

그 바지락 칼국수랑 새빨간 겉절이 김치가 참 따뜻하고 맛있었는데. 

나보다 여덟 살 어린 동생에게 칼국수 면발을 끊어 먹여 주시던 고운 사장님 얼굴이 아직도 선하고,

지금도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면 그 때가 생각난다.

 

저 아이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짭짤한 돈코츠 육수와 숙주가 가득한 라멘 한 그릇을 추억의 음식으로 떠올리게 되겠지.

 

 

 

오늘 먹은 돈코츠 라멘은 역시나 맛있었고

그 아이를 다시 봐서 또 반갑고 아주 잠깐, 옛날이 그리웠다.

 

그리고

얼른 코로나도 가라앉고 학교들도 정상적으로 개학해서

그 어린 친구도 더 영양학적으로 균형있는 급식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지랖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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